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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일기] <이토록 멋진 휴식 (TIME-OFF)> - 의도적으로 타임오프하라! 본문

한권의 책이 남기는 충격 (한남충)

[독서 일기] <이토록 멋진 휴식 (TIME-OFF)> - 의도적으로 타임오프하라!

Ufungi 2023. 2. 12. 01:02

 

존 피치 & 맥스 프렌젤,
<이토록 멋진 휴식 (TIME-OFF)>


윤작은 토양의 황폐화를 막기 위해 두 가지 이상의 작물들을 매년 번갈아 재배하는 것을 의미한다. 매년 같은 작물을 재배할 경우 토양이 황폐해질 뿐만 아니라 병충해 위험도 증가한다. 하지만 한 작물과 콩과 식물을 번갈아 재배할 경우 콩과 식물과 공생하는 뿌리혹박테리아가 황폐해진 토양에 질소를 보충해주어 토양이 빠르게 회복된다. 또한 매년 종이 바뀌기 때문에 종 특이적인 병충해의 위험도 감소한다. 이처럼 윤작할 작물을 잘 고른다면 한 작물만 주구장창 키우는 것보다 훨씬 생산성이 높아질 것이다.

우리 인생도 윤작이 필요하다. 우리는 성공하기위해 주구장창 일만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너무나 쉽게 휴식을 포기한다. 그러나 이는 매년 같은 작물을 재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생을 황폐하게 하고 일까지 망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근로를 미덕으로 생각하고 오래 일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나도 마찬가지였고 심지어 성공을 향해 가는 것 같아서 뿌듯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노동 시간이 정말 생산성과 비례할까?

"근로의 도덕은 노예의 도덕이며, 현대 세계에 노예제도는 필요없다"

버드런트 러셀, <게으름에 대한 찬양>
바쁜 것을 티내고 싶은 조바심에 우리는 기력이 쇠하도록 일할 때가 많다. 유일한 목적은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함이다.

존 피치 & 맥스 프렌젤, <이토록 멋진 휴식 (Time-off)>, p.123

 

최소한 일을 잘하고 싶다면 타임오프를 포기하면 안된다. 물론 이는 주객전도적 발상이다. 타임오프는 일을 잘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인생의 주인이 되기 위한 도구이다 (제대로만 한다면 삶의 목적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일과 타임오프를 병행할 때, 그리고 콩과 식물과 같이 적절한 타임오프를 선택했을 때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 수 있다. 이 책의 원제는 Time-off 이고 한글 제목은 <이토록 멋진 휴식> 이지만, 휴식은 타임오프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이 책에서는 다양한 타임오프 방법들을 제시한다. 사람마다 맞는 방법이 있고 맞지 않는 방법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런 것들을 모두 떠나서 타임오프의 본질은 '의도성'이다.

 


즉 의도적으로 일을 멈추고 타임오프를 위한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타임오프 방법은 다음과 같다.

휴식

좋은 휴식은 어떤 것일까? 퇴근 후 누워서 알고리즘이 추천해주는 쇼츠 영상 보기? 이는 한 해 수확이 끝난 뒤 아무런 작물도 심지 않고 내버려 두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는 콩과 식물을 심어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어야한다. 즉, 휴식도 활동적이어야 한다. 일 외에 가장 보람을 느끼는 활동이지만 그동안 바쁘다고 외면했던 활동을 해보자. 그 외에도 좋은 휴식의 조건은 심신을 이완할 뿐 아니라 능동적으로 통제할 수 있어하며, 몰입할 수 있어서 일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몰아낼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몰입이 에너지를 뺏기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것은 삶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다. 그렇다고 바쁘게 움직이라는 말은 아니다. 명상, 독서, 자연을 벗삼은 산책은 그렇게 활동적이지 않아보여도 좋은 휴식의 조건을 만족한다.

연결하기

창의성을 원한다면 하나의 문제에 너무 몰두하지 말자. 창의성의 본질은 '연결하기' 이며 나의 모든 관심사를 수용하고, 자유롭게 경계를 넘나들며 관심사 간의 공통점에 집중하자. 다만 이는 다급하게 멀티태스킹 하라는 얘기가 아니며 거시적으로 멀티태스킹 하라는 얘기다. 즉 여러가지 폭 넓은 주제의 여러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되, 충분한 시간동안 한 가지에 몰입한 뒤 멈추거나 다른 일을 수행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무의식은 앞서 고민했던 문제들에 대한 해걸책을 내놓을 것이다. 물론 그 전제는 충분히 몰입해야한다는 것이다! 만약 무언가에 몰입해서 일하는 것이 힘들다면 개인적으로 매일 집중 명상을 하는 것을 추천한다.

최소 7시간의 수면 시간을 확보하자. 바쁘다는 핑계로 수면을 포기하면 수면의 수많은 장점을 잃게된다. 우리 수면주기는 크게 숙면과 렘수면으로 나눌 수 있는데 숙면은 주로 신체의 치유와 단기기억의 장기기억화, 렘수면은 정서적 치유와 창의성을 담당한다. 우리는 깨어있는 동안에는 국지적인 정보 처리는 효과적으로 수행하지만 뇌 속 원거리 소통에는 서툴다. 반면 잠에 들면 우리 뇌의 여러 부위는 서로 활발히 소통하기 시작한다. 숙면은 해마속 단기기억을 피질 속 장기기억으로 옮기고, 렘수면은 DMN(default mode network)을 활성화시켜 여러 장기 기억끼리 소통하게 한다. 이러한 '연결하기'는 앞서 말했듯 창의성의 본질이다. 어떤 문제에 몰입하다가 얕은 낮잠을 자면 DMN이 창의적 방식으로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도 있다 (숙면하지 않도록 주의!)

운동

현대 뇌과학에서 우리의 뇌는 생각하기 위해 커진 것이 아니라 점점 복잡해지는 신체 활동에 따라 커졌다는 이론이 지배적이다. 한 예로 멍게는 유생시절 바닷속을 자유롭게 헤엄치다가 정착하게되면 더 이상 움직일 필요가 없어서 양분 보충을 위해 신경계를 없앤다고 한다. 이처럼 운동과 뇌는 서로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게다가 우리의 모든 정신활동도 건강이 무너지면 무슨 소용인가. 일이 아무리 바빠도 포기하면 안되는 것은 운동과 잠이라 생각한다 (운동에 대한 부분은 본문 내용과 상관없음).

고독 & 성찰

많은 사람들이 고독외로움과 동일시하지만 둘은 대조적이다. 사람들은 혼자 있는 시간의 즐거움, 즉 고독을 느낄 수 없기 때문에 혼자 있으면 외로움을 느낀다. 고독을 통한 성찰에서 우리는 스스로와 현재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고 내가 원하는 것과 사회가 나에게 요구하는 것을 분별할 수 있게된다. 이 책에서는 성찰해볼만한 질문 몇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평소 가장 아끼는 것에 그만한 시간을 들이고 있는가?
설레거나 원하는 삶에 부합하지도 않는 일을 왜 수락하는가?
그 일을 피하거나 대체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좀 더 재미있게 할 수 있을까?

여행

진정으로 여행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출근길도 여행이 될수도 있는 것이다. 여행은 일상으로부터 도피가 아니라, 오히려 일상적인 것들조차 진정으로 탐사하여 새롭게 보는 것이다. 여행을 통해 얻는 새로운 시각은 창의성의 원천이다.

진정한 여행자는 정해진 계획을 고집하지 않으며 도착하는 일에 연연하지 않는다.

노자

정리

앞서 말했듯이 타임오프의 본질은 '의도성'이다. 물론 우리가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내 의도대로 통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괴테의 소설 <파우스트>의 교훈처럼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기 마련이며, 노력하지 않으면 방황도 없다. 모든 걸 통제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는 인식하되, 일과 타임오프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할수록 우리는 주도적 삶에 다가갈 것이다. 주도적인 삶이란 내가 원하는 것과 사회가 나에게 요구하는 것 사이의 차이를 분별하여 내가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나는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 그리고 영화 <위플래쉬> 같은 자기 파괴적인 치열함에 끌렸었다. 나 역시 좋아하는 한 가지 일에 미치고 싶어서 마치 차안대를 낀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렸다.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으니 내가 원하는 것과 사회가 나에게 원하는 것을 잘 분별하지 못했다. 그로 인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넘어 과로했다. 물론 연구는 내 생존 및 꿈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다. 하지만 시야가 좁아지니 수단이 목적이 되어버리고 내가 왜 균학을 공부하기로 했는지, 좋아했던 것들이 뭐였는지도 잘 생각이 안났다.

"치열함보다 꾸준함이다. 치열함은 간혹 일어날 뿐이다. 최대치에 도달하려면 대가가 따른다. 누구도 매일 전력 질주할 수는 없다."

존 피치 & 맥스 프렌젤, <이토록 멋진 휴식 (Time-off)>, p.147

 

오늘 다이소에 들렀는데 판매중인 종이 가방에 "To be beautiful means to be yourself" 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이 책에서는 사람들이 타임오프를 통해 어떤 업적들을 이뤘는지를 많이 보여준다. 하지만 대단한 업적을 이루고자 타임오프를 하는 것은 주객전도이다. 누구든지 세상에 쓸모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할 필요는 전혀 없다. 오직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지금 바로 타임오프를 시작하자.

혜자(惠子)가 장자(莊子)에게 말했다. “자네의 말은 아무 쓸모가 없다네.”

장자(莊子)가 말했다.

“쓸모없음을 알아야만 비로소 쓸모가 있음에 대해 더불어 말할 수 있다네.

무릇 천지(天地)는 넓고 또 크지 않은 것이 아니지만

실제로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은 발로 밟는 크기만큼의 공간일 뿐이지.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발의 크기를 측량하여 그 공간만 남기고

주위의 나머지 땅을 깊이 파 황천(黃泉)까지 도달하게 한다 치면,

그러고서도 〈발 딛는 공간이〉 사람들에게 여전히 쓸모 있는 땅이 될 수 있겠는가?”

혜자(惠子)가 말했다. “쓸모가 없겠지.”

장자(莊子)가 말했다.

“그렇다면 쓸모없는 것이 쓸모가 있다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구만.”

<장자(잡편)>, 제 26 편 외물 [7]
나는 시를 짓기 위해서나, 설교를 하기 위해서나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뿐 아니라 다른 어떤 사람도 그것 자체를 위해 존재하지는 않았다. 이 모두 부차적으로 일어나는 것일 뿐이었다. 각자를 위한 진정한 천직이란 자기 자신에 도달하는 단 한 가지뿐이다.

헤르만 헤세, <데미안>, p. 211